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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의 야무진 예술교육, 지금의 덴마크를 만들다 – 덴마크 시민예술학교 Bornholm Hojskole 편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10/02 조회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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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의 야무진 예술교육, 지금의 덴마크를 만들다 – 덴마크 시민예술학교 Bornholm Hojskole 편

(세계여행  천우연통신원)

땅끝마을,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중학교 때까지 학교가 끝난 뒤에는 친구들과 논과 밭을 뛰어다니며 사계절 내내 얼굴이 새까맣게 타도록 놀았다. 어딜 가나 사방이 탁 하고 트인 공간에서 자라서 그랬을까, 나와 내 친구들은 의견을 이야기하는 상황들이 있을 때면 “이렇게 이야기 해도 되나? 내 말이 맞을까?” 하는 사전 검열 없이 우리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는 야무진 시골 학생들이었다.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된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 할 때에 명문대를 많이 보낸다는 명문 고등학교에 보냈다. 시퍼런 하늘 아래 산과 들로 뛰어다니던 나와 내 친구들은 하루아침에 너무나도 크게 바뀌어 버린 생활 패턴에 참 많이들 놀랐다. 40명 남짓 되는 친구들과 함께 작은 교실, 작은 책상, 작은 의자에 앉아 밤 11시까지 책을 들여다보는 생활을 3년간 해야 했다. 들에서 뛰어 놀던 내 몸은 온갖 투정을 해대며 상황을 거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로 받아들이며 이것이 이 사회에 살아가는 절차라 생각했다.

수 백번 책상을 박차고 학교 밖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 정말 튀어 나왔으면 달라졌을까, 명문대, 대기업하던 선생님들 앞에서 왜 명문대에 들어가야만 하느냐고 야무진 시골학생으로 돌아가 또박또박 이야기 했으면 달라졌을까, 3년의 시간을 머뭇머뭇, 꾸역꾸역 참고 참다가 공부도 학교생활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학생이 되어 졸업을 했다. 참 애매한 성적표를 달고 애매한 대학(선생님들 표현으로 명문대가 아닌)에 입학하여 아주 애매한 대학생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다행인 것은, 시골에서 나고 자란 감성은 여전히 내 몸에 남아 혹독한 사회생활 안에서 언제나 든든한 밑천이 되어 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시골을 찾았다. 논,밭,바다,산은 여전히 착한 모습 그대로 포근하게 나를 반겼고, 나는 그 앞에서 참 많이도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학생이 있는 집안에서는 명문고와 명문대에 여전히 혈안을 띄고 있었다. ‘내 자식만큼은 명문대학, 대기업’ 이란 생각 아래 ‘잘나가는 도시의 삶’을 동경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17년전, 나와 같이 애매한 고등생활을 해야 할 친구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운이 빠졌다.

그러던 차, 지난 해 8월, “덴마크, 시민학교”라는 기사를 접했다. “누구에게나 열린 자유로운 교육”이라는 구절을 읽고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 했다. 그리고 9월 학기가 막 시작될 무렵, 나는 그곳에서 조금이나마 지친 마음을 달래고 희망을 얻고자 덴마크 행 비행기에 올랐다.

덴마크에서의 6개월간 학교에서 동거동락하며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학교를 만들었고, 학교는 우리들을 위해 물심양면 도왔다. 그리고 지역사회는 적극적으로 학교의 프로그램에 개입하여 학교의 질을 높이고 재정적으로 살림을 도왔다. 그 놀라웠던 6개월간의 덴마크 학교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덴마크의 시민학교란 무엇일까?

노래하고 시를 읊고 이야기하며 노는 학교, 그리고! 시험이 없는 학교!”

150년전, 덴마크에서 태어난 그룬츠빅이라는 학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차리고 교육을 받지 못한 가난한 소작농층을 계몽할 필요를 느꼈다. 시골에 사는 소작농민들은 대학에 등록할 시간도, 돈도 없었기 때문에 대학을 대신할 것이 필요했다. 시민학교는 이들이 사회에 적극적이고 깊이 있게 참여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아래에서 위로 정치적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과 수단을 제공하며, 사회적 계층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서 기능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이다. 

현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까지 시민학교에 머물며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할 수 있는 교육 공간으로서의 기능과,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친 성인들이 잠시 일을 놓고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 휴식 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퇴직 이후 무료한 삶을 이곳에서 활력 있게 보내는 시간을 갖기도 하며, 나와 같이 세계각국의 젊은이들이 덴마크의 교육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학교는 사회적 계층을 뛰어 넘어 작은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교사진 및 학생 간의 상호 존중이 가장 큰 밑바탕이다. “시험이 없는 학교”는 무엇보다 내 마음을 가장 가볍게 만들었다.

 

▶ 학교 본관 모습

▶ 학교 주변 모습

 

 

우리가 만드는 학교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실수하며, 더 많이 도전하는! 학생의 손으로 만드는 학교”

내가 머문 시민학교는 덴마크의 보룬홀룸이라는 섬에 있는 예술학교였다. 모든 학생은 기숙사에 머물렀다.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은 17세부터 60세까지 다양했다. 처음 만난 그날, 우리는 어디에서 온, 몇 살, 누구라는 간단한 소개가 아닌, 서로가 살아온 지난 삶을 나누고 이해하는 깊은 시간을 가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빨리 친해져야 했고, 서로 의지해야 했다. 다음날 부터 학교의 모든 시스템은 학생들의 손으로 자체적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급식당번을 정해 아침 점심 저녁을 차려내고 치웠다. 일주일에 한번 기숙사 대청소를 하고 난 뒤에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여 회의를 진행 했다. 크게는 학교의 방향성과 현안들을 다루고 작게는 식당 메뉴추천까지,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우리의 현재이고 학교의 미래였다. 토론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들을 여과 없이 얘기하다 보니, 문득 중학교 시절 땅끝 시골마을의 야무진 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학교의 크고 작은 행사는 모두 우리의 몫이었다. 년간 행사 중 외부 손님들을 모시는 중대한 축제 또한 주제 선정에서부터 기획, 진행, 모든 것이 우리 손에 맡겨졌다. “불,빛”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진행 했던 “light festival”은 학생들의 손에 의해 그야말로 성황리에 진행 되었다. 주저함 없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자신 있게 진행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선생님들의 믿음이었다. 중요한 손님들이 오는 행사에 학생들이 혹 실수는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있으실 텐데, 실수하면 하는 대로 웃어주며 북돋아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편하게 실수하고 더 많이 웃으며 더 나은 모습을 위해 더 많이 도전했던 축제였다. VIP의 컷팅식에 개회사 등 겉치레 행사를 한국에서 너무 많이 봐서 일까, 매 순간 의식할 수 밖에 없던 나의 우려와는 달리 학교는 VIP의 눈치도, 잘 하려고 하는 억지스러움도 없었다. 우리들이 주인공임을 인정하고, 지지해 준 선생님들이 참 고마웠다. 

 

 

▶ 기숙사 내부를 공개하여 만든 “빛” 전시

 

                    

 

▶ 축제 전체 프로그램 지도

▶ 스쿨버스를 내부를 활용하여 만든 미디어 전시

 

 

우리를 돕는 학교

학교와 학생, 억지스러운 관계가 아닌, 이웃으로, 친구로, 가족으로 만나는 정다운 관계”

보룬홀룸이라는 아름다운 섬은 도자기와 유리공예가 발달되어있다. 실질적으로 섬에 사는 이들의 대부분이 지역 장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또한 예술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학교이다. 다섯개의 교과목(도자기, 유리공예, 파인아트, 음악, 주얼리)이 있고 학생들은 본인들이 원하는 수업을 선택할 수 있다.

수업을 받으며 선생님의 역할에 대해 또 한번 놀랐다. 선생님들의 수업 개입이 “이렇게 방관해도 되나” 할 정도로 작았다. 그리고 나는 나중이 되어서야 그것이 이 학교의 교수법임을 알게 되었다. “가르치는” 행위를 줄이고 선생님들은 언제나 기다렸다. 또한 학생들의 작품을 평가하는 시간 대신 “토론하는 시간”을 만들어 끊임없이 서로에게 질문하게 만들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본인의 작품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생각하게 하는 시간들을 마련한 것이다. 잘한 작품 못한 작품 가려낼 것 없는 이 곳에서 나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부담도 없이 주욱 주욱 붓질을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림을 바라보며 아팠던 지난 기억들을 덮고 흘리고, 행복했던 기억들은 덫칠하여 또 한번 끄집어 내어 미소 지었다. 어떤 색의 삶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 나누며 배웠다. 고등학교시절 대학 진학을 위해 미술과목을 없애버린 대한민국의 학교가 미웠다.

6개월간 내가 가장 많이 보았던 선생님의 모습은 우리가 쓴 붓들을 다시 한번 헹구고 말리며, 재료들이 떨어지지 않게 꼼꼼하게 챙겼던 모습일게다. 무엇보다 그림을 기술이 아닌 마음으로 그린다는 것을 끊임없이 행동으로 보여주신 일이 아닐까 싶다.

▶ 도구 활용법을 가르쳐 주시는 모습

▶ 학생들의 작품을 가지고, 배치에 따라 달라지는 작품평 토론 수업중

화,목요일 저녁에는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했다.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삶을 우리와 함께 공유하길 바랬다. 본인들의 전시회, 콘서트에 초청을 하기도 했고, 식사에도 초청하여 파티를 열기도 했다. 선생과 제자, 억지스러운 관계가 아닌, 섬 안에 같이 사는 이웃으로써, 친구로써, 가족으로 진심으로 대해 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6개월이 학교생활이 아니라 작은 공동체에서 살다 온 기분이 들곤 한다.

▶ 주말, 선생님들과 함께 근교 피크닉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학교

지역민이 문턱 없이 드나드는 학교, 학교가 품고 있는 지역민들에 대한 존중”

학교는 1년 365일, 지역민들에게 언제나 활짝 열려있다. 지역에 큰 음악회가 열릴 때에는 리허설장소, 공연장이 되기도 하고, 매주 화요일은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포크댄스 수업이 열리는 장소로도 쓰인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보룬홀룸의 섬 문화’를 지키기 위해 연간 한번 특별한 이벤트와 축제를 학교에서 진행한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섬에서만 사용하는 ‘사투리 지키기 퀴즈쇼’를 진행했다. 학생들과 지역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단순히 학교의 역할을 넘어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는 것이다. 지역민이 문턱 없이 드나드는 학교, 지역문화를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가슴 깊이 품고 있는 학교, 왠지 모를 부러움에 괜히 마음이 심술 나듯 쓰라렸다.

▶ 사투리 지키기 퀴즈 쇼  

▶ 지역사회 교육박람회 개최  

짧은 6개월의 수업을 모두 마치고, 학교를 떠난 던 날, 15년 전 수능 시험 전날 아빠가 내게 내밀었던 장미꽃이 기억났다. 여전히 아빠의 장미에 대한 나의 해석은 명쾌하지 않지만 아빠 딴에는 3년간 고생했다는 의미로 내미신 모양이라 생각한다.

출발선, 요이땅 하면 수능에서부터 출발해 결승선까지 죽어라 뛰는 껌껌했던 경쟁사회에 열 아홉살 나는 아빠가 준 장미처럼 살길 바라며 살아왔다. 답답한 한국사회에 어느새 무뎌진 감각이 학교를 돌아서며 서서히 다시 돋기 시작했다. 뒷산 너머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온 마음으로 느낄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이웃과 함께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도했다.

아빠의 장미처럼 “인생, 꽃 처럼” 말이다.

지난 6개월간, 학교는 내게 예술을 가르쳐 준 것뿐만 아니라 세상을 올곧게 바라 볼 줄 아는, 꽃 같은 마음가짐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덴마크가 내게 준 선물 같던 시간, 그 6개월이 정말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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